김제 금산사 종무소.
문을 열면 20년 가까이 묵묵히 금산사를 지키고 있는 김종렬 종무실장이 보인다.
금산사의 모든 일들은 꼼꼼한 그의 손을 거친다.
그 옆 미소로 반기는 비구니 스님, 여찬스님이다.
종무소에 들릴 때 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님이 궁금해 명함을 내밀며 물었다.
“스님. 종무소에 항상 있으시네요. 실례지만 무슨 소임을 맡고 계시나요?”
“네 재무요.”
뜻밖의 대답이다.
재무 소임은 사찰의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 예산을 세우고 살림을 살아야하는 중요한 소임이다.
특히 교구본사면 현재 진행 중인 불사와 문화 행사, 정부 예산관련 사업 등 사찰의 모든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자리.
돈과 관련되기 때문에 사고 없이 주지스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상좌.
특히 비구 스님이 맡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포교나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여찬스님은 처음 금산사 재무소임으로 왔던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들 제가 오니까 중앙승가대 출신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주지 성우스님이 승가대 교수 출신이셨으니 줄 타고 온 것 아니냐며, 허허.”
“근데 저는 거기 출신도 아니고 주지 스님이랑 특별한 인연도 없는데, 그냥 저희 스님이 가보라고해서 왔어요.”
내용인즉 주지 성우스님이 재무 소임을 볼만한 비구니 스님을 찾았고, 그 전 사찰에서 재무 소임을 원만하게 수행했던 여찬스님을 추천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력서만 보고 방 한 칸을 내주었단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금산사 주지 성우스님의 비슷한 인사 케이스는 하나 더 있다.
금산사 전주 도심 포교거점 전북불교회관 보현사.
노인 일자리 관련 사업을 하는 시니어클럽과 무료 급식 등 사회복지 사업을 하는 센터가 자리한 곳이다.
지난 1월 새 관장으로 부임한 우림스님.
화엄사에서 살다 온 스님은 도반의 추천으로 주지 성우스님께 이력서를 보냈고 잠깐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라는 얘기를 들었단다.
여기까지가 성우스님의 인사에 관한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금산사에서 성우스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물었다.
“스님들 이야기 들어보면 재미있습니다.”
성우스님은 웃음부터 짓는다.
“재무 스님 여찬스님과 우림스님은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세요.”
“여찬스님은 그전 사찰에서 재무로 능력을 검증을 받은 스님이에요. 또 비구니 스님을 뽑은 이유는 비구들은 그렇게 꼼꼼하지가 못해요. 툭하면 자리나 비우지.”
“본사라지만 우리같이 작은 살림을 사는 절은 여러 몫을 하는 성실한 스님이 필요하거든요. 여찬스님이 잘해주고 계세요.”
“또 우림스님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금산사는 시니어클럽을 통해 노인복지사업을 하고 있는데 관장이 복지사니까 얼마나 좋아요. 딱 인거죠.”
“저는 한 분야에 능력 있는 유능한 스님들을 그 자리에 알맞게 보내드린 거예요. 제가 너무 고맙죠, 허허허.”
성별과 출신을 따지지 않는 능력위주의 인사.
우리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를 금산사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이것이 월주스님부터 내려오는 금산사 스님들이 가지고 있는 DNA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는 1월 31일 금산사는 예산을 지원받아 전주에 100억 규모의 세계평화명상센터의 첫 삽을 뜨게 된다.
전라북도라는 한국불교의 척박한 땅에서 희망의 싹을 누군가는 심고 있었다.
김민수 기자 btnnews@b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