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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수좌 원융스님 원적

기사승인 2019.03.04  09: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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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수좌 해우당 원융스님이 3월 3일 오후 10시 20분 해인사 관음전 수좌실에서 원적에 들었습니다. 세수 82세, 법랍 48년.

원융스님의 분향소는 해인사 보경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3월 7일까지 진행됩니다.

3월 7일 오전 10시 보경당에서 해인총림장으로 영결식 후 낮 12시 해인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엄수될 예정입니다.

'간화선 선양'을 사명으로 생각했던 스님은 열반 전 문도와 제자들에게 "이오위칙(以悟爲則)을 명심하면서 절대로 화두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를 하며 오직 화두참선을 통해 생사해탈에 이를 것을 마지막까지 강조했습니다.

원융스님은 청년 시절 조계사에서 청담 대종사로부터 '신심명' 강의를 듣던 중 홀연히 발심해 수행자의 길을 서원했고, 당대의 선지식인 성철 대종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1972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습니다.

1974년부터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서 12년간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장좌불와를 실천했으며 1993년부터는 해인사 선원장과 해인총림 유나를 역임했으며 2006년부터는 해인총림 수좌로서 후학들을 제접해 왔습니다.

스님은 스승 성철 대종사에 대한 지극한 신심으로 평생 선방 시자를 자처하면서 스승의 법문집인 『본지풍광』과 『선문정로』의 필사를 도왔고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전심법요』, 『임제록』, 『조주록』 번역에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1999년 『간화선』을 저술해 선종돈법(禪宗頓法) 선양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기본선원 교선사 시절에는 손수 편집한 『서장』을 교재로 후학들의 안목을 열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2년 동안거 해제 후에는 서울 사당동 정안사 묘심선원에서 『서장』 강석을 폈고, 2005년 부산 범어사 설선대법회에서 4000여명의 사부대중에게 간화선의 요체를 밝히는 사자후를 했습니다.

남동우 기자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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