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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노동위, 독실한 불자 김복동 할머니 극락왕생 발원

기사승인 2019.03.19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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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의 49재가 서울 조계사에서 엄수됐습니다. 시민과 불자들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이석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할머니.

영면에 든 지 49일 째인 지난 17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극락전에서 49재가 엄수됐습니다.

윤미향 / 정의기억연대 대표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계승하겠다는 우리의 결연한 의지,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할머니 떠나보내며 환한 빛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49재에는 불자와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해 김복동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혜찬스님은 “사바세계에서 겪었던 아픔, 슬픔, 분노는 모두 놓으시고 극락왕생하기 바란다”며 추모했습니다.
  
혜찬스님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당신의 소원이라던 우리나라도 서로가 화합하고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서 남북통일이 돼서 전쟁이 없는 나라, 다시는 우리들과 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전쟁 없는 나라가 돼서 여러분들의 후손들은 마음 놓고 살아가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만 14살의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3월 피해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고발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가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에 힘썼습니다.

시민단체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나비기금’을 설립하는 등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평화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독실한 불자였던 김복동 할머니는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 마지막 가는 길에 염주와 다라니를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머니는 생전 "부처님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딸을 걱정하며 양산의 한 사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딸이 살아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49재 참석한 불자와 시민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습니다.
 
권미경 /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노도위원장
(할머니 남아있는 우리가 열심히 투쟁하고 투쟁해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받을 겁니다.)
윤홍조 / 마리몬드 대표
(김복동의 희망을 통해 우리 민족의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선물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당신에 제시해주신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세상을 오늘도 우리는 꿈꿉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22명.

생존자들의 나이가 90세 전후의 고령에 접어들면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와 노력이 시급합니다.

BTN 뉴스 이석호입니다.

이석호 기자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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