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은 75주년을 맞는 광복절입니다. 일제강점기 혹독한 탄압 아래에서도 용성스님, 만해스님 등 불교계는 자주독립과 항일투쟁에 적극 나섰습니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용명스님 명함이 80여 년 만에 발견됐습니다. 최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다음 해 사찰령을 제정해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던 한국불교를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제의 탄압은 한국불교를 말살시키지 못했고, 불교계는 항일독립운동에 보다 적극 나서게 됩니다.
불교사회연구소가 지난 2017년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일제강점기 불교계 독립운동 관련 유공포상자는 총 8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린 용성스님은 3.1운동을 주도했으며 독립의 자양분이 될 민족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불교 대중화를 주창했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기도 한 용성스님의 유훈은 건국공로 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법륜스님 / (사)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BTN 용성스님 다큐멘터리 중)
(용성스님의 독립사상의 핵심은 나라가 자주적으로 독립돼야 한다는 것과 그 나라의 주인이 민이어야 된다는 것. 불교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 다시 말하면 대각사상은 부처님이 가르치셨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용성스님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스님은 시 <님의 침묵>으로도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해 불교의 사회 참여를 주장하기도 한 스님은 민족과 조국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호되게 꾸짖기도 했습니다.
전보삼 / 만해기념관장(2019년 1월 BTN과의 인터뷰 중)
(만해가 생각했고 만해가 실천했던 그 행동과 사상은 금세기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용성스님과 만해스님이 수감되자 초월스님은 중앙학림 내 한국민단본부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단체를 이끌며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제작 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임시정부를 후원했습니다.
운암스님은 1930년 중후반기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조선민족전선연맹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봉선사 스님 신분으로 만세 운동을 조직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최근 80여 년 전 명함 한 장이 발견됐는데, 주인공은 통도사 순회포교사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용명스님입니다.
용명스님은 통도사 전수학원의 교사 수성스님과 학생들에게 민족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또한 일본어 사용과 창씨개명을 반대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법응스님 /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전화인터뷰)
(비록 빛 바랜 한 장의 명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용명스님 명함은 스님께서 해방 전 통도사의 순회포교사라는 소임으로 포교와 독립운동을 몸소 실천하신 증거로서 충분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님 개인은 물론 통도사의 근대사, 그리고 독립운동사의 하나의 자료로서 그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광복 75주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한 스님들의 자취에서 지금의 한국불교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BTN뉴스 최준호입니다.
최준호 기자 btnnews@b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