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우리나라 핵의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준기 전 서울대 교수가 6번째 수필집을 출간했습니다. 위암과 파킨슨병이라는 질곡 속에서도 포교사에 도전하는가 하면 300편이 넘는 논문과 에세이를 쓰며 오히려 글 쓰는 의사로 알려졌습니다. 넉넉한 마음의 온기를 전하고 있는 저자 정준기 교수를 하경목 기자가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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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2018년 서울대의대를 퇴직하고도 핵의학 연구와 자문을 지속하며 수필집 <이 세상에 오직 하나>를 출간한 정준기 명예교수를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만났습니다.
위암과 파킨슨병이라는 두 질곡 속에서도 왕성한 연구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는 정준기 교수는 오히려 긴 투병생활이 쌍두마차가 되어 수필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정준기/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5년 쯤 투병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병이 생기니까 생각나는 것도 많고 갈등도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것을 수필을 쓰는 것으로 해소를 해서, 좋게 말해서 승화를 시켰다고 할까요. 그래서 쓰게 됐는데, 의외로 재미나 나더라고요.)
정준기 명예교수는 후진국 수준의 국내 핵의학을 세계 4위권으로 끌어올리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투병 중에도 300여 편의 SCI급 논문을 써 약 16,000회 넘게 인용 되는 등 학문적 업적도 쌓았습니다.
그런 그가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감동스럽게 읽은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말합니다.
내과 의사이자 시인이기도 한 소설 속 주인공 ‘안빈’이 자신의 삶의 롤모델이 됐고, 내과를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정준기/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읽고 감동해서 이런 의사가 되면 괜찮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내과도 하고 핵의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새로운 학문을 연구도 하고. 나중에 글 쓰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인이고 문학가였던 주인공을 따라 흉내 내서 쓴 게 아닌가...)
6권의 산문집은 의학에 관한 이야기에서 <참 좋은 인연>을 기점으로 불교적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길을 따라 수덕사 견성암에서 일엽스님을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조계사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포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정 교수는 수필의 중심엔 인연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준기/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인연이나 이런 것에 의해서 굉장히 다양하게 예후가, 치료효과도 방향이 다릅니다. 그런 것을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제시해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책 속 쉰 여덟 편의 단상에는 정준기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넉넉한 마음이 온기를 품고 독자에게 전해집니다.
특히, 오계에 대한 저자만의 해석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정준기/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부정어는 열린 문장이 아닌 닫힌 문장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해결이 안되는거죠. 술을 먹지 말라면 술 만 먹지 말라는 것이지 그것이 약물을 과용하지 말자고 연결이 안되거든요. 하지만 술같은 약물에 의존하지 말자고 하면 열린 문장이 되고 많은 아이디어를 포함할 수 있죠.)
의학자이자 수필가로 삶의 다양한 모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따뜻하게 감싸 안는 글을 써온 정준기 교수.
져주는 것은 나쁜 인연을 막고 좋은 인연을 생기게 하는, 그래서 모두가 멋있게 이기는 마법같은 길이라는 저자의 옅은 미소 속의 속삭임이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BTN뉴스 하경목입니다.
하경목 기자 btnnews@b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