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조사선 전래 1200주년 2〕 선불교 중흥 이끌어

기사승인 2021.01.07  07:30:00

공유
default_news_ad2

〔앵커〕

선불교는 1200년 전 도의국사의 조사선 전래를 시작으로 구산선문이 형성되며 한반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중에서 도의국사의 법맥을 이은 가지산문과 이를 중심으로 이뤄진 선종의 중흥 역사를 윤호섭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리포트〕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당 유학을 마치고 서기 821년 신라 현덕왕 13년에 고국으로 돌아온 도의국사는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합니다.

당시 교학을 중심으로 한 교종의 거대한 세력 앞에 선 사상이 수용되지 못하자 훗날을 기약한 겁니다.

이후 도의국사의 제자인 염거화상을 거쳐 보조체징 선사에 이르러 선종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보조체징 선사는 전남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에 주석하면서 왕실과 진골귀족의 후원을 받아 가지산문을 열었습니다.

보림사는 중국 선종의 육조혜능 대사가 주석한 사찰과 같은 이름으로 당시 선종과 가지산문의 권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정운스님 / 조계종 전 불학연구소장(전화인터뷰)
(보조체징스님이 가지산문을 열었을 때 어느 정도였냐면 그 당시에 500여 명이 수행했다고 할 정도였거든요. 가지산문 같은 경우에는 장흥 보림사를 통해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했고, 그 당시에 상당한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하면서 불교는 다시 화엄종을 비롯한 교종의 세력이 확장됩니다.

이후 11세기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고 선과 교의 겸행을 주장하며 선종은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가지산문에서 12세기 원응학일 선사가 왕사와 국사로 책봉되고, 13세기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일연 선사를 배출하면서 선종이 불교를 주도했습니다.

또한 보조지눌·태고보우 국사 등 선종을 대표하는 고승도 잇달아 등장해 선종의 영향력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운스님 / 조계종 전 불학연구소장(전화인터뷰)
(선 사상 발전을 위해서 우리나라 선사 등의 연구나 세미나가 지속적으로 개최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 옛날 화두만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맞는 화두가 나오면서 일반인들이 살아가며 평소에 수행할 수 있는 화두를 개발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도의국사와 가지산문이 우리나라 선불교의 초석을 다졌듯이 지금의 한국불교는 선사들의 원력을 되새겨 다시 불교 중흥을 이끌 때입니다.

BTN 뉴스 윤호섭입니다.

 

윤호섭 기자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nd_ad5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default_news_ad4
default_nd_ad3

최신기사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뉴스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