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천막에서 대가람으로'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기사승인 2021.07.06  07:30:00

공유
default_news_ad2

〔앵커〕

 ‘천막에서 대가람으로’ 두 번째 순서는 서울시 양재동에서 지역 불심을 높이고 있는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입니다. 1980년대 구룡사의 시작은 가건물과 천막법당이었을 만큼 작았는데요, 회주 정우스님은 사찰 소임자들이 창건 당시의 초발심을 되새기고, 얼마나 신도들과 호흡하느냐에 따라 포교 성패가 나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룡사의 과거와 현재를 윤호섭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리포트〕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주택단지 사이에 자리한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지금은 수많은 불자들이 찾는 대규모의 도심포교당으로 입지를 다졌지만, 1980년대 구룡사의 시작은 가건물과 천막법당이었을 만큼 작았습니다.

정우스님 /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여기가 허허벌판이었어요, 논밭. 외딴집 하나 있었는데 2층집 세 얻어서, 마당에다가 한 20평짜리 남대문에서 천막을 제작해서 간이법당으로...)

이곳에서 스님과 불자들은 만 명의 부처님을 모시자는 원력을 세우고, 1989년 만불보전을 낙성하며 도심포교 요람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30대의 젊은 나이로 구룡사를 이끈 정우스님은 목탁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불자들과 전법 원력을 다졌습니다.

산중에만 있던 사찰이 도시로 나온 데다 젊은 스님이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고 어린이 포교에 나서자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런 사부대중 원력에 사찰 최초로 극단 ‘신시’를 창단하고, 8곳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민의 생활에 스며들었습니다.

노래방 법회와 상담전화기관, 결혼상담소 운영도 구성원 모두가 역할을 분담한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정우스님 /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신심과 원력과 정진과 회향을 삼귀의, 사홍서원처럼 생활화했다고 할 수 있어요. 신심이라는 것은 생명력이에요. 그 다음에 원력은 정직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원력을 바탕으로 구룡사는 여법한 모습을 갖췄지만 정우스님은 사찰운영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신도회조차 만들지 않았습니다.

신도 간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종교의 본래 기능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스님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사찰 소임자들이 포교당 창건 당시의 초발심을 되새기고, 얼마나 신도들과 호흡하느냐에 따라 포교 성패가 나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우스님 /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부처님 일이란 중생을 위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수행과 포교를 의미할 거라고 생각해요.)

진실한 포교에는 쉬운 길이 없다고 말하는 정우스님.

지금의 웅장한 구룡사가 되기까지는 오직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겠다는 사부대중의 신심과 원력이 있었습니다.

BTN 뉴스 윤호섭입니다.
 

윤호섭 기자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nd_ad5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default_news_ad4
default_nd_ad3

최신기사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뉴스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