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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증거’ 나온 주어사지, 정밀조사 필요

기사승인 2022.05.21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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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불교와 천주교의 역사가 함께 깃든 것으로 알려진 여주 주어사지에서 사찰 전각을 구성하는 유물들이 출토됐습니다.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기 전부터 불교 유적이라는 단서가 나온 건데요. 주어사지에 대한 정밀조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어사지 시굴조사 현장에 윤호섭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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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평가받는 여주 주어사지에서 사찰 전각의 부재가 출토돼 불교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운당대사비와 권철신·정약전의 묘지명, 고지도 같은 간접증거만으로 지금의 자리를 주어사 터로 추정해왔는데, 사찰 전각의 존재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나온 겁니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여주시청의 지원을 받아 지난 열흘간 실시한 시굴조사 결과를 어제 공개했습니다.

[스탠딩 in]
이곳은 여주 주어사지 시굴 현장입니다.

연구소 측은 이번 시굴조사에서 2호 건물지로 알려진 이 자리가 금당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범자인 옴자가 새겨진 막새편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주어사로 추정되는 이곳은 사찰로서도 상당한 위상을 갖췄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탠딩 out]

연구소는 또 기존에 정리된 건물지 1호부터 5호까지 시굴한 결과 실제 전각이나 요사채는 총 3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진덕 / 불교문화재연구소 발굴팀장
(중호문(여러 겹의 반원 무늬) 기와편들이 주로 많이 나오고, 여기가 불교와 관련된 유적이라는 건 출토유물로 봐서는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현장을 방문한 자문위원들은 기와 문양과 도자기편 양식을 볼 때 출토 유물이 17세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어 19세기에 유행한 양식의 도자기편도 섞여 있어 적어도 사찰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8세기 강학 당시 사찰은 이미 폐사됐다는 일부 천주교 측의 주장을 정면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제정스님 /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전각이라든지 스님들 수행공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거죠. 문화재청이라든지 여주시라든지 관계 국가기관들과 잘 협의해서 고증을 통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할 것이고...)

억불숭유와 박해로 각각 조정의 탄압을 받았던 불교와 천주교.

지금의 주어사지가 우리나라 종교 화합의 역사적 장소가 맞는지 확인할 정밀조사가 필요해보입니다.

BTN 뉴스 윤호섭입니다.
 

윤호섭 기자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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