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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달라이라마, 한국불자들과의 만남

기사승인 2012.11.11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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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아라마와 한국불자들이 만나는 특별한 법석이 마련됐습니다. 지난 5일 일본 요코하마 인터콘티넨털호텔. 독일 불이선원장 현각스님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특별 친견법회에서 달라이라마는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종교적인 신념만 따른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염려한 달라이라마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통역‧번역=양승규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불교는 무엇입니까?

달라이라마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따시델레, 따시델레. 먼저 한국법우님들을 만나서 기쁩니다. 우리는 동일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입니다. 

어제 제가 언급한 것처럼 저는 많은 법우님들이 우리들의 믿음을 단지 전통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의식과 의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의 힌두교들도 자신의 믿음을 의식과 의례로 받아들입니다. 많은 기독교인과 이슬람인들도 종교를 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종교인들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따를 경우에는 절대로 붕괴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티베트에는 빨리어와 산쓰끄리뜨어에서 번역된 경론이 300부정도 있습니다. 티베트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진 주석서는 수천 권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과 법에 대한 믿음과 의식, 예를 들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만 한다면, 수천 권의 주석서과 인도에서 번역된 300여권의 경론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수많은 주제와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승복을 입는 것만으로 만족하고서 ‘나는 승려이고, 불교도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누군가가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불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국의 여러 법우님들께 불교공부에 좀 더 집중해주시기를 호소하고 제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야경’입니다. ‘반야경’이라고 할 때 이름에 ‘반야’가 있습니다. 선정에 관한 경전이 있기는 하지만 주된 것을 반야경으로 간주합니다. 여기서는 주로 ‘반야’를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 즉 지혜를 어떻게 일으켜야 하는가 하면, 처음에는 ‘듣는 것에서 생긴 지혜’에 대해서 믿음을 통해 이해합니다. 그 다음에는 들은 것에 대해 거듭해서 생각함으로써 ‘생각하는 것에서 생긴 지혜’에 대해서 확신합니다. 확신한 의미에 대해서 거듭해서 닦음으로써 처음에는 분석을 가진 경험을 얻고, 그 다음에는 분석이 없는 경험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할 경우 ‘닦는 것에서 생긴 지혜’가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지에서 지로 나아가는 것은 ‘닦는 것에서 생긴 지혜’를 통해 나아갑니다.
질문이 있으면 하십시오.

지관(止觀), 외도들에게도 있습니다

현각스님 존자님께서는 한국불자들이 좀 더 열심히 불교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조계종은 선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종단입니다. 선불교는 많은 책을 보지 않고 준비 없이 우리의 본성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은 바쁜 세상에서 사람의 깊은 본성을 직접 보는 것을 통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달라이라마 본성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의 단계는 세속적인 단계입니다. 이것에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단계는 궁극적인 실재입니다. 단지 마음의 맑음을 아는 것은 세속적인 단계입니다. 이것은 힌두교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단계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티베트어로 할 테니 잘 들으십시오. 지(止)가 있고, 관(觀)이 있습니다. 지와 관은 외도들에게도 있습니다. 마음의 본성을 보기 때문에 현상은 흐려집니다. 지를 닦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현상은 사라지거나 흩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와 외도의 선정의 차이, 관의 차이 등을 알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불교도이면서 세계시민

현각 어제 존자님께서는 우리들이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개인들은 서로를 이해하여 조화로워야 하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운데 사회가 조화롭게 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달라이라마 유럽연합의 정신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현실을 인식하고, 개별적인 나라의 이익보다는 공동의 이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마음과 좁은 시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한국이 비록 동일한 민족, 동일한 언어, 동일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분리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전체적인 시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근시안적인 시각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언급한 것처럼 종교도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만약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는 모두 동일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도 행복한 삶을 원하고 우리도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푸른 지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들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동일한 인간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1973년에 제가 처음으로 유럽에 갔을 때, 델리에 있는 BBC특파원이 “유럽을 방문하는 특별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슨 의도가 있습니까?”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세계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세계시민으로서 세계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 여러분들도 세계시민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들도 세계의 일원입니다. 여러분들도 70억 명 중의 일부입니다. 자연재해, 지구온난화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뉴욕처럼 세계의 일부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한국이 제외되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신앙하는 신조차도 그와 같이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진정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조화로울 수 있나

현각 중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십시오? 우리들은 극단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도적인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종교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달라이라마 어떤 분야입니까?

현각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사람들을 돕는 부분에서 어떻게 조화롭고, 쉽게 대화할 수 있습니까?

달라이라마 하나의 예가 있습니다. 제가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한 명, 천 명, 수십만 명일 경우에라도 저에게는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사람입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에도 제 자신을 여러분들과 같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란 점이 모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물론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아시아인, 한국인, 티베트인, 불교인과 비불교인이 됩니다. 한국사람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교육을 받은 사람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점에서는 우리는 동일한 인간입니다.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각 어제 존자님께서는 이 세상, 우리의 인생, 우리의 뇌에 영양을 끼치는 것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을 믿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신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감정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감정적인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체는 아닙니다. 우리의 종교와 실천에 대해서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영혼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합니까?

달라이라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진정한 과학자들의 마음은 매우 열려 있습니다.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1979년에 저는 소련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다섯 가지 감각기관 외에 다른 것을 말했을 때, 그 때 제가 근본 마음을 말했습니다. 그때 소련의 과학자들은 곧바로 그것을 종교적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과학적인 사고는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정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과학자들, 예를 들면 미국의 과학자, 유럽의 과학자들은 매우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람들은 근본 마음인 의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명상할 때 감각기관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명상을 할 때 보는 것, 듣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본성은 지속됩니다. 그 마음이 청정한 마음입니다. 지금 몇몇 과학자들은 이미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명상할 때 뇌의 변화가 어떤가를 연구합니다. 이미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적입니다. 객관적입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부처님의 말씀 중에서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40년 전에 저는 과학자들과의 대화를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저의 바람과 의견을 한 미국불자여성에게 말했습니다. 제 바람과 의견을 듣고는 그 여자분은 “조심하십시오. 과학은 종교를 죽이는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오, 나의 제자들이여, 나의 가르침을 여러분들의 신념과 헌신으로만 받아들이지 마라. 철저하게 따져보고, 연구해보라. 연구하고 따져보고 난 후에 확신을 일으키고, 그리고 나서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라.” 이것은 매우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시작했습니다. 용수보살을 포함한 모든 나란다의 지자는 위대한 사상가이고, 논리학자이고, 철학자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따져봅니다. 만약 어떤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순된다면,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용수보살을 포함한 모든 나란다의 지자들은 그와 같이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감정에도 둘이 있습니다. 하나의 감정은 마음을 닦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비심과 같은 것을 한 번 일으키면 매우 강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은 이유와 논리를 근거로 합니다. 다른 감정인 애착, 두려움, 성냄과 같은 마음은 불교적인 시각에서는 근본적으로 무지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마음은 논리적인 배경이 없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왜 극단적 견해가 나타납니까?

현각 존자님, 왜 세계 도처에서 정치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와 같은 부분에서 극단적인 견해가 나타납니까?

달라이라마 그것은 전체적인 시각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면 그 다음에는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변합니다. 그렇다면 그 시각은 편견이 됩니다. 현실의 다양한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전체적인 시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각 존자님, 우리가 출가자가 되고, 사람들이 불교도가 될 때,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추구하는 명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명상과 불교를 웰빙, 행복,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을 생각합니다. 진리를 찾고, 깨달음을 추구하고, 깨달음을 위해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한 존자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불교, 공유해야 합니다

달라이라마 부처님께서 불교를 말씀하신 것은 부처님 자신의 제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체중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항상 일체중생을 돕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단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사람들은 불교를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을 목포로 합니다. 다른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아란야의 토굴 등에서 안거에 머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다람살라에도 있습니다. 많은 불교의 수행자들이 그렇게 합니다. 다른 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수행을 하면서도 설법하고 강의합니다.
한 번은 대만에서 붓다다싸라고 하는 훌륭한 스님이자 학자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사원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있는 조그만 법좌. 큰 나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그 분은 법을 설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계신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수행자는 훌륭한 비구이고, 빨리전통을 수행하고, 그 전통으로 출가했습니다. 또 스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설법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기독교인, 무슬림, 힌두들이라도 불교적인 실천에 대해 진정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일반적으로 한 점의 명상인 지(止), 인내에 대한 실천, 용서에 대한 실천과 같은 것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인으로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실천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미국 기독교인 친구가 있습니다. 신부입니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항상 저에게 한 점 명상, 이타심 등 여러 가지 수행에 대해 묻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순야따 즉 빈 것[空]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이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불교도의 일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정말로 빈 것에 대해 생각하면, 빈 것은 무의존적인 것이 없는 것이고, 상호의존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론은 그 사람이 창조자, 신, 절대자를 변함이 없는 것으로 전적으로 믿는 것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빈 것의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고유한 불교의 것입니다. 일반적인 것은 얼마든지 공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비신자인 과학자들과 이타심, 용서의 중요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불교경전에서는 마음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정말로 진지하게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최고로 훌륭한 과학자도 뇌와 감정의 관계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음과 감정의 체계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당신은 비신자이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비신자이라서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공유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사람인 비신자와 인간으로서, 형제자매로서 공유해야 합니다. 어제 설명한 것처럼 불교경전에서는 세속적인 윤리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현각 존자님, 바쁘시지만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존자님께서는 지금까지 한국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의 많은 불자님들이 존자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합니다. BTN불교TV 회장 성우스님과 사장님께서는 존자님의 인터뷰를 통해 존자님의 말씀을 한국불자들에게 들려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존자님의 설법은 BTN불교TV를 통해 매주 서너 차례 한국불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십시오. 불교TV를 시청하는 불교도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불교에 도움이 되고, 한국의 전통을 견고하게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가를 말씀해주십시오.

진정한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달라이라마 : 먼저 법우님 여러분,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모든 물질적인 풍요를 소유한 사람, 매우 부유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물질적인 가치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적인 가치는 내적인 평화를 주지 않습니다. 매우 부유한 사람은 물질적인 것은 풍요롭지만, 사람으로서는 의심, 기대, 두려움 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결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 중에서 의학자, 약학자, 뇌과학자들은 마음과 감정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마음, 즉 번뇌를 없앨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인도전통에서는 지와 관을 실천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마음의 본성, 마음의 체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불교에서 설명하는 마음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동안에도 우리 불교도들은 불교가 우리의 고유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배워야 합니다. 불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신앙하는 것은 훨씬 견고합니다. 그 믿음은 논리적인 것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인 접근입니다. 단지 믿기만 하는 믿음, 전통적인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불교도들은 진정한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이고, 달마가 무엇이고, 승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법우님들이 일상적인 명상을 진행하면서도 공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또 한국불교의 가르침은 대부분 중국어로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일부 한문으로 된 불교문헌은 티베트문헌보다 풍부한 것이 있습니다. 몇몇 경우에는 티베트문헌이 한문문헌보다 더 풍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으로는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훌륭한 인도논사가 남긴 문헌을 여러분들의 언어로 번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보다 더 지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도전이 있습니다. 도전은 유용합니다. 인도의 2500년의 역사에서 불교와 법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거대한 비불교의 세력은 몇 가지 불교의 개념에 대해 도전했습니다. 그들이 도전했기 때문에 불교논사도 똑같이 도전했습니다. 도전이 없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도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21세기에 우리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교와 법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몇몇 경우에 좀 더 확인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사론> 3장에서 이 세상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고, 태양과 달이 비슷한 높이에 있고, 그 주위를 수미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여전히 불교도이고, 단순한 불교승려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수미산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친이 언급했기 때문에 여전히 땅이 평평하고, 수미산이 중간이라고 고집한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불교적인 시각으로 보더라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체계를 알면, 이유, 논리, 실험을 통해 우리가 불교를 발전시킬 것을 안다면 도전이 있더라도 불교에 대한 여러분들의 신념이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만약 신념을 단지 전통으로 받아들인다면 도전이 생길 경우 약간 불편해지고 흔들립니다. 이것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강한 불교적 신념을 가진 것을 찬탄합니다.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도에는 여러 가지 종교적인 전통이 있습니다. 인도는 여러 종교의 발생지이고, 그래서 많은 종교는 인도를 기원으로 합니다. 오늘날 인도에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서로 배우면서 조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여러 가지 믿음이 존재할 것입니다. 종교 간의 화합과 친밀감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편 티베트처럼 한국은 전통적으로 불교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여러분의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불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모든 종교 전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 것은 자신의 종교입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TN불교TV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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