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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불교 역사․문화 조명 “금산사, 후백제 왕실 원찰”

기사승인 2023.11.27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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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북 김제시와 동국대학교가 1200년 전 지금의 전주를 중심으로 견훤이 세운 후백제 시대 금산사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위상 재정립에 나섰습니다. 금산사에서 후백제 불교와 금산사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견훤왕의 원찰로서 역할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금산사의 역사와 불교 문화재 등이 집중 조명됐습니다. 조효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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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지난 24일 동국대HK연구단과 김제시 주최로 금산사 처영기념관에서 후백제 불교와 금산사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학술대회는 학계와 불교계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후백제 역사에서 불교와 금산사의 역할과 의미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로 의미가 컸습니다.

일원스님 / 금산사 주지
(이런 학술대회를 통해서 후백제의 역사가 잘 정립돼서 전주와 김제 등이 고도로 지정돼 발돋움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백제를 세운 견훤과 불교, 그 중심에 있었던 금산사의 역할을 조명하며 시작됐습니다.

동국대 사학과 최연식 교수는 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원찰이라고 주장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된 견훤이 머문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던 금산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겁니다.

최연식 / 동국대 사학과 교수
(금산사는 견훤 왕실의 원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밀접한 관련이 있고, 견훤이 금산사에 있었던 것은 실상 아들이기 때문에 폐위했다고 해도 어디 가둬둔 게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곳에 의미가 있는 곳에 또 견훤이 원래 좋아했던 곳에 모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송화섭 전 중앙대 교수도 미륵신앙에 심취했던 견훤이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율사의 미륵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실천해 중생을 구제하고 용화세계를 실현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방등계단과 홍예문을 근거로 제시하며 금산사가 왕을 유폐할 목적이 아닌 국운이 융성했던 당시 백제의 원찰로 조성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후백제의 불교미술, 건축과 조형 등을 주제로 발표하며 후백제가 4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주와 그 일대에 미친 영향을 조명했습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 문광스님은 김제에서 활동한 탄허스님과 법상종을 개종한 진표율사 등 전북지역에서 활동한 주요 스님들의 수행처와 발자취를 문화재로 남겨 전승해야 현재의 역사로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문광스님 / 동국대 불교학술원 HK 연구교수
(왜냐하면 여기에 우리 불교 팻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진표율사의 성지라는 말도 하나도 없고요. 찾아갈려야 갈 수 도 없고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부터 잘 정리해서 우리 위대한 김제와 금산사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알려야 하지 않겠나)

전북 김제시와 동국대는 미륵성지로 백제인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금산사의 역사와 역할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며 그간 정리되지 못하고 비어있던 후백제사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연구하고 채워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BTN 뉴스 조효근입니다.
 

호남지사 조효근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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