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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증도가 3> "발문이 금속활자본 근거"

기사승인 2021.07.2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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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기획보도 ‘남명증도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에 도전하다’ 세 번째 순서는 고려시대 최고 권력자였던 최이가 <남명증도가>에 직접 남긴 발문 해석을 짚어봅니다. 한학자와 연구자들은 목판 번각이라는 기존 문화재위원회의 해석과 다른 견해를 보였습니다. 윤호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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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고려시대 최고 권력자였던 최이의 주도 아래 대대적으로 간행된 <남명증도가>.

이를 기념해 최이가 책 말미에 남긴 발문은 <남명증도가>의 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중요한 판단 요소입니다.

‘어시모공 중조주자본(於是募工 重彫鑄字本)’

간단하게 풀이하면 “이에 각공을 모집해 금속활자를 거듭 새겼다”는 뜻인데, 문화재위원회는 이를 “목판으로 번각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1239년 이전에 간행한 금속활자본이 따로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목판을 번각했다는 해석입니다.

당시 찍어낸 금속활자본이 현재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가정하고 내린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승균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전화인터뷰)
(보통 목판으로 새겼을 때 ‘각(刻)’자를 쓰거나 그걸 가지고 인쇄했을 때 ‘도장 인(印)’자를 써서 ‘각인’ 이런 표현을 흔히 쓰는데, 최이의 발문에서 동사로 볼 수 있는 ‘조(彫)’자는 목판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으로...)

우리나라 최고 한학자로 손꼽히는 구봉 이정섭 선생은 ‘중조주자본’을 “주자본으로 다시 새겨”라고 해석했습니다.

모본이 더 이전에 만든 금속활자본인지, 아니면 송나라 당시의 목판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을 금속활자로 다시 새겼다는 뜻입니다.

다른 학자들 역시 한문 문법상 ‘중조’를 목판 번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또한 최이가 최초의 금속활자본도 아닌 목판 번각본을 간행하면서 이런 발문을 남길 이유가 없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손환일 / 서화문화연구소장(전화인터뷰)
(‘중조(重彫) 주자본(鑄字本)’이라고 하면 ‘거듭 주자본을 조판해서’라고 해석돼요. 고려 때에도 목판본 만드는 걸 조판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에요. ‘중(重) 조주자본(彫鑄字本)’이다. (발문이) 다 4언으로 돼 있기 때문에 ‘거듭 자본을 주조해서 이수기전(길이 전하게)을 한다’고 봐야...)

<남명증도가> 공인본에서 드러난 금속활자 인쇄의 특징과 당대 최고 권력자가 남긴 발문의 또 다른 해석은 문화재 재감정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BTN 뉴스 윤호섭입니다.

윤호섭 기자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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