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영화 ‘나랏말싸미’를 통해 세종대왕의 깊은 불심이 재조명됐습니다. ‘사리영응기’는 이런 세종의 불심을 직접 드러내는 중요한 기록인데요, 한글 이름을 기록한 부분도 있어 고유어 연구에서도 중요한 사료입니다. 한글날 기획보도 두 번째 순서는 최준호 기자입니다.
---------------------------------
〔리포트〕
세종대왕은 유교 국가 조선의 왕이었지만 불심이 남달랐다는 것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신미대사가 깊은 관여를 했다는 주장을 통해 세종의 불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기록이 또 하나 있습니다.
1449년 신미대사의 동생인 김수온이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사리영응기’는 대왕이 인왕산에 선왕의 명복을 비는 법당을 건립하고 낙성식을 할 때 나타났던 부처님 사리에 대한 영험을 기록한 책입니다.
김성주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불당을 지으면서 그 불당을 짓게 된 내력과 신미스님에게 부탁해서 예찬문을 짓게 합니다. 나중에는 낙성식을 한 저녁에 사리가 출현하고 그 다음날에도 출현합니다. 그런 기록들을 다 모아서 김수온에게 짓게 한 책입니다.)
‘사리영응기’는 세종의 깊은 불심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궁궐 내에 법당을 짓는 것은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세종은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낙성식을 성대하게 봉행해 불심을 명확하게 드러냈습니다.
김성주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궁궐에 불당을 짓게 하는 것은 유래가 없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유신들의 반발을 태조 때부터 있던 것을 옮기면서 없어진 것이다, 라는 구실을 대면서 불당을 짓고, 이 책 내용에 의하면 법회를 아주 성대하게 합니다. 그런 세종의 호불을 이 책을 통해서 명확히 알 수 있는 거죠.)
또한 ‘사리영응기’가 세종대왕 당시에 편찬된 한글 기록이라는 점 역시 사료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리영응기’의 끝에는 법당 건립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는데, 그 중 한글로 표현된 이름이 47개가 나타나 고유어 인명의 연구자료로 활용됩니다.
김성주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유어 이름들은 차자표기로 쓸 수밖에 없었거든요. 차자표기로 써도 정확하지 않았어요. 47명의 고유어 인명을, 훈민정음이 위대하지 않습니까? 그대로 발음 나는 대로 적혀있기 때문에 조선 초기 우리 고유 인명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고 볼 수 있죠.)
불교와 한글 두 분야에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리영응기’.
이 문헌을 통해 세종대왕의 불심과 한글 창제의 위대함을 되새겨 보는 한글날이 되길 기대합니다.
BTN뉴스 최준호입니다.
최준호 기자 btnnews@btn.co.kr